오늘은 판교에 올라온 이후에 가장 피곤한 하루였다.
나는 지방에 살다가 처음으로 경기도권에 살고 있다.
지방 중에서도 우리 집, 내 방은 산과 논이 있는 방향으로 창문이 나 있었고, 날씨가 좋은 날에 창문을 열고 자면 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나는 그런 집이었다.
블라인더를 내릴 필요도 없이 밤이 되면 밖은 깜깜해지고 켜놓은 모니터만 내 방을 비추고 있었다.
지금 여기 고시텔은 내 손바닥만 한 창문이 있고, 그 건너에는 건물로 막혀 있다.
벽과 딱 붙어있는 침대의 위치는 밤마다 한기가 올라와서 발을 시리게 한다.
화장실 환기구에서는 가끔 역한 냄새가 올라와 화장실 문을 열어둘 수 없다. 화장실 문도 여닫이문이라 완벽한 밀폐가 되지 않는다.
어느 날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화장실 앞에 놔둔 발 걸래용 수건이 흥건히 젖어있었다.
내 침대 바로 옆에 있는 벽 넘어의 방은 아침이고 밤이고 항상 TV를 켜놓는다. 자려고 누우면 TV 소리가 난다.
그 때문에 나는 첫날부터 잠이 잘 오지 않았었다. 그럴 때마다 항상 유튜브에서 비 내리는 영상을 틀어두고 잔다.
수면 유도 최면영상이나 asmr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진짜로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비 오는 영상을 틀어두면 잠이 잘 왔다.
그렇게 2주가 지나고 이제는 적응을 했을까 싶어서 비오는 영상을 켜지 않고 자보려고 했다.
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.
옆 방의 전등을 켜고 끄는 스위치 소리, 조그마한 창문 밖에서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, 술 먹고 크게 떠들며 지나가는 행인의 소리, 건물 내부의 상하수도관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, 등등... 잠을 자기 위해서 집중할 수 없었다.
어릴 때부터 나는 몸이 지치면 나는 스스로를 잘 느낄 수 있었다.
심장이 뛰는 소리, 심장에서 나온 맥박이 귀 뒤, 관자놀이, 정수리를 거쳐 손끝과 발끝으로 차례대로 흘려가는 것이 느껴졌다.
그리고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고주파 음을 잘 들었다.
이런 상태에 한 번 빠지면 회복하기가 어렵다.
그다음 날도 피곤한 몸으로 일을 하고 돌아와 몸을 제대로 관리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.
나름대로 찾은 해결책은 맥주 한 캔을 먹고 이른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이다.
나는 술을 먹으면 아무 생각도 없이 한 가지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.
본가에 있을 때 술을 잔뜩 먹고 방에 누워있으면 옆 동의 TV 소리가 들렸다.
평소에는 노래를 들으면서 일기를 쓰는데 노랫소리 때문에 일기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, 오늘은 피곤한 덕분인지 노래를 틀어두어도 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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